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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한국 축구의 초대 전설이라 불리우는 전설 차범근 전 선수 현 위원님에 대해 작성해 보려고 합니다.
재미있게 봐주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한국 축구의 선구자 – 어린 시절과 대표팀 활약
차범근은 1953년 경기도 화천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고, 고등학교와 대학을 거치며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는 한국 축구가 국제 무대에서 아직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던 시기였지만, 차범근은 뛰어난 체력과 강력한 킥, 그리고 유럽 선수들 못지않은 스피드를 앞세워 주목받기 시작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그는 일찍부터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대표팀 공격수로 활약하며 수많은 골을 넣었고, 아시아 무대에서 한국 축구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는 한국 대표팀의 핵심 공격수로 활약하며 아시아 정상급 스트라이커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별명은 “차붐”이었다. 이는 폭발적인 슈팅력과 빠른 돌파에서 비롯된 것으로, 상대 수비수들이 그를 막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시기 차범근은 이미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전체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공격수였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의 전설적인 커리어
차범근이 진정한 세계적인 스타로 거듭난 것은 독일 무대 진출 이후였다. 1979년, 그는 독일 분데스리가의 다름슈타트에 입단하며 한국인 최초로 유럽 빅리그에 진출했다. 이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 바이어 레버쿠젠에서 활약하며, 유럽 무대에서 아시아 선수의 가능성을 보여준 첫 번째 사례가 되었다.
프랑크푸르트 시절, 차범근은 1980년 UEFA컵(현 유로파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구단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어 레버쿠젠에서도 1988년 UEFA컵 우승을 이끌었는데, 이는 한국 선수로서는 전례 없는 업적이었다. 그는 유럽 대항전 무대에서 두 번이나 우승컵을 들어 올린 유일한 아시아 선수로 기록되어 있다.
분데스리가에서의 활약도 빛났다. 총 308경기에 출전해 98골을 기록했으며, 이는 오랜 시간 동안 아시아 선수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았다. 독일 언론과 팬들은 그를 단순히 ‘외국인 선수’가 아니라, 팀의 핵심 공격수로 존중했다. 그의 빠른 돌파와 강력한 중거리 슛은 분데스리가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차범근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공격수로 인정받았다.
당시만 해도 아시아 선수의 유럽 진출은 매우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차범근의 성공은 후배 선수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오늘날 손흥민이나 기성용 같은 한국 선수들이 유럽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차범근이 개척자로서 닦아놓은 길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퇴 이후 지도자와 멘토로서의 발자취
현역 은퇴 이후에도 차범근은 한국 축구와 긴밀히 연결된 삶을 이어갔다. 1989년 선수 생활을 마친 그는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1990년대에는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한국 축구의 발전에 기여했다.
특히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을 이끌며 큰 주목을 받았다. 비록 대회에서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그는 선수들에게 유럽 무대에서의 경험을 전해주며 국제적인 감각을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K리그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아시아 클럽 대항전 우승을 이끌며 지도자로서도 성과를 남겼다.
또한 그는 축구 행정가와 해설위원으로도 활약하며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후배 선수들에게 “세계 무대에 도전하는 정신”을 강조하며,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을 넘어 도전 정신과 태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차범근의 아들 차두리 역시 프로 축구 선수로 활약하며 대표팀에서도 뛰었는데, 이는 차범근이 한국 축구사에서 단순한 한 개인의 업적을 넘어 ‘가족의 축구 전통’까지 남겼음을 보여준다.
마무리
차범근은 단순한 축구 선수를 넘어, 한국 축구의 개척자이자 아시아 축구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작은 나라에서 출발해 유럽 무대에서 성공을 거둔 그의 발자취는 지금도 많은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현역 시절 보여준 폭발적인 플레이, 그리고 은퇴 후에도 이어지는 멘토로서의 역할은 차범근이 단순한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한국 축구의 역사 자체임을 말해준다.